✔ 1. 'SOS'를 보냈다.
쿠팡은 보도자료 서두에서부터 '고령화'와 '저출산'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하며 3년간(2026년까지) 3조원을 투자해 신규 풀필먼트센터(FC) 확장과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 등에 나서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쿠팡플레이 콘텐츠 투자도 확대하겠다고 내용도 담겼지만, 물류 투자가 주를 이룹니다.
물류에 투자해서 개선된 사례도 발표했는데요. 대형마트까지 접근성이 멀었던 강원도 삼척 도계읍에 로켓배송을 시행한 후, 한달 5000건 이상 주문이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신규 FC와 배송망을 확대하면서 고용도 증가하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지방에 유입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는데요. 쿠팡 측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쿠팡 전체 직원 6만여명 중 2만여명이 19세~34세 청년들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지방의 일자리 창출. 대한민국 정부가 항상 고민하는 문제죠. 저희는 쿠팡이 낸 이 보도자료가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쿠팡은 한국에서 이렇게 대대적인 투자도 진행하고 고용도 창출하며, 지역 소멸도 막는 좋은 기업이야." 이런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여기서 쿠팡의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퀵플렉스 배송기사 수수료 등, 암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요지는 왜 이 시점에 쿠팡이 이러한 메시지를 냈는지, 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알아보자는 취지입니다.
당연히 빼 놓을 수가 없는 기업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입니다. 크게 보면 알리바바그룹과 핀둬둬죠.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공격적인 한국시장 진출. 저희는 작년 7월, 94원짜리 물건도 무료로 배송하는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시장 공습이 거세질 것이라는 콘텐츠를 제작하여 뉴스레터로 배포한 바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지금 한국은 단기간에 상당한 시장점유율과 이커머스 거래액을 중국에 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이 역직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통관이나 해상 물류 부문의 이점을, 도리어 중국기업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온 겁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현지 공장 혹은 도매상과 계약을 맺고, 국내 소비자와 연결되는 무역과 유통 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중국과 거래하던 우리나라 무역상사나 도소매업체, 리셀러 등은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닐까요. 거래처에 상품의 데이터베이스(DB)를 빼앗긴 거니까요. 주로 거래하던 잘 팔리는 물건은 무엇이고, 한국 사람들이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지, 이런 자잘한 DB부터 시장의 트렌드 변화까지, 이런 정보를 중국의 공장이나 도매처가 확보해 잘 팔릴 물건들을 앱 전면에 배치하는 거죠.
4일 앱·리테일 분석서비스인 와이즈앱 리테일 굿즈에 따르면 테무의 지난달 MAU(월간활성이용자)는 829만명을 기록하며 3위로 올라섰습니다. 한 달 만에 무려 250만명이 증가한 셈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887만명, 쿠팡은 3086만명입니다. 테무의 뒤를 이어 11번가, G마켓, 위메프, 티몬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요. 점점 상위권 기업들과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중국의 소위 C커머스라고 불리는 이들 기업의 약진을 쿠팡도 가만히 눈 뜨고 볼 수는 없겠죠. 그래서 지난 보도자료에 담긴 메시지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의 소멸을 막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한층 강조했죠. 중국계 기업들의 공격적인 한국 진출을 막아달라는 SOS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한국에 물류센터를 세우거나 운영하지도, 일자리도 창출하지도 않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듯 보였는데요.
또 쿠팡은 지난 하반기부터 한국 기업의 대만 진출 사례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도 지속적으로 배포했는데요. 이 또한 내수를 넘어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즉 역직구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쿠팡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어느 정도의 규제를 통해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가 담긴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2. B마트를 위협한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쿠팡을 넘어설 수 없는 지점은 '물류'에 있습니다. 지금의 쿠팡과 동일한 대대적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물가 상승분을 감안해 더 많은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이야기겠죠. 그렇다고 CJ대한통운이나 한진과 같은 기업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알리나 테무의 물류만 100% 전담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수직계열화를 이룬 쿠팡과 같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없겠고요.
SK증권 유승우 연구위원은 얼마 전 저희 로지브릿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리익스프레스가 물류 인프라를 대규모로 확보한 쿠팡에 물류를 위탁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특히 아마존과 쇼피파이가 협력한 사례를 들며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었는데요.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충분히 이 또한 어느 정도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알리바바그룹과 쿠팡의 교집합에 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알리바바의 주식을 대부분 매각했다고 알려져,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류 이야기를 해보면, 쿠팡은 알리와 테무가 쫓아올 수 없을 정도의 '초격차'를 벌이려는 심산으로 보입니다. 쿠팡은 이번 보도자료에서 '5무(無)' 전략을 내세웠는데요. 무료배송, 무료배달, 무료반품, 무료직구, 무료시청(쿠팡플레이)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역시나 '무료배달'입니다. 쿠팡이 27일 배포한 3조 투자와 17일 배포한 쿠팡이츠 무제한 무료배달은 많은 부분에서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CJ대한통운이 오네(ONE) 서비스를 론칭하고, 네이버가 '도착보장'을 제공하는 등 로켓배송은 점점 차별화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새벽배송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쿠팡의 3조 투자에는 더욱 고도화된 물류서비스 제공이 담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침 7시 전 배달이 아니라, 와우회원을 대상으로 지금의 SKU(품목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30분에서 1시간, 2시간, 지정 시간 배달 등 더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배송(배달)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시 떠오르는 기업이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30분 배달, B마트입니다. SKU나 가격에서 경쟁이 안 되는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촘촘하고 밀접하게 배송과 배달망을 연계할 필요성이 큰데요. 적자를 감안한 선제적 배달시장 투자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 이를 통한 이커머스와의 연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커머스를 넘어 외식시장과 식자재 등으로 확장해서 보면 당분간 쿠팡의 새로운 성장 동력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쿠팡이 이렇게 앱을 기반으로 강력한 연결성을 만들게 된다면, 차츰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관측되는 원격으로나 약 배달 등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이미 보도자료에도 나왔지만 전국을 100% 로켓배송 구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죠. 어쩌면 쿠팡을 단순히 이커머스 앱으로 볼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