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편지 한 번씩은 써보셨을텐데요. 펜팔, 훈련소 편지 등 다양한 편지 문화가 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인터넷 편지, 카카오톡 등 예전의 감성이 없어져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오늘은 현 시대의 편지인 우편의 감성을 만들어주고 그 외에도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일을 하는 우체국에 관해 몰랐던 9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1. 우체국 택배? 소포?
우체국은 2001년 2월부터‘우체국 택배’라는 명칭을 사용해왔었는데요. 20년만에 2021년 6월 30일‘우체국 소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공익적 성격의 국가 사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모두 택배 아니라 소포로 기억해두시면 좋을 것 같네요.
2. 우체국 심벌마크는 원래 제비가 아니다?
다들 누구나 친숙한 우체국 심벌마크를 제비로 알고 있으실텐데요?
맨 처음 만들어진 우체국 심벌마크는 우정의 ‘우’를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갑신정변 이후 11년간 멈춰졌던 우정서비스 1895년 재개된 후, 1900년 통신(우편,전신) 업무를 관장하는 독립기구인 <통신원>이 탄생했는데, 최초의 심벌마크는 이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905년에 전화업무가 추가되면서 한차례 바뀌었고, 6.25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파업무가 추가된 것을 형상화하여 26년동안 새롭게 사용했습니다. 오랜 기간 사용되던 심벌마크는 1982년 체신부에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분리되고 우정사업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면서부터 1984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제비의 모습으로 우체국 심벌마크가 결정됬다고 합니다.
제비는 옛날부터 국민 정서에 친숙하고 소식을 전하는 이미지로써 자리잡고 있던 길조였기 때문이죠. 지금 사용중인 심벌마크는 2010 우정사업본부 출범 10주년을 맞이하여 또 한 번 변신을 하였다고 합니다. 제비꼬리의 빨강, 주황, 노랑 세가지 색은 우편, 예금, 보험 3개 분야사업을 의미하며 조화로운 화합을 색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3. 우체통은 빨갛다?
우리나라도 원래는 빨갛지는 않았습니다.
초창기 우체통은 암갈색 벽걸이형 나무 우체통이었는데요. 그 이후에는 저희가 알고 있던 빨간색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57년에 윗부분만 빨간색, 아랫부분은 초록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초록색은 안정, 노란색은 행복, 약속, 빨간색은 신속함을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초록색이 사라지며 지금의 빨~간색의 우체통이 되었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된 걸까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빨간색 우체통을 사용하는 나라는 호주, 멕시코, 영국, 포르투갈, 마카오, 캐나다 등 25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 17개국에서 노란색 우체통을, 미국과 러시아 등 7개국에서 파랑색 우체통을, 중국, 홍콩, 아일랜드, 이집트 등에서는 초록색 우체통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4.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은?
원래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 바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 있었는데요. 높이 7M, 가로 3M, 세로 3M의 희망우체통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이의 기억 속에 항상 머물고 우리의 소망과 비밀을 품은 정겨운 존재’로 그런 이름을 지었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활용이 못 되고 있다고 하네요.
게다가 201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짐 볼린’이 만든 162.63 세제곱미터 크기의 우체통이 들어서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라는 타이틀도 뺏겼다고 하네요.
5. 우편번호 적어야 한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보내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을 문제인데요. 주소지가 새로이 도로명으로 바뀐 이후로 더더욱 우편번호를 모르시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혹시나 내 소포가 이상한데로 가진 않을지, 못 가진 않을지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선 주소지를 정확히 기입하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번지수나 도로명 주소로 제대로요. 검색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우편번호는 정확한 호수까지는 반영된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주소지만 아신다면 앞으로는 당당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6. 배송이 빠르다?
온라인 쇼핑에 푹 빠져있는 터라 일주일에 꼭 한번 이상은 택배가 문 앞에 있는데요. 우체국 소포가 유난히 빠르다고 느껴졌던 적 있나요? 우체국 소포는 허브를 거치지 않고, 각 지역의 집중국에서 집중국으로 발송되는 경우들이 있어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송이 가능합니다. 덕분에 익일 배송이 된 적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많았죠. 그치만 로켓은 너무 빠르네요.
7. 서울 우체국 베프는 o o 이다.
1884년 서울과 인천 간 우편물이 교환되기 시작으로, 고종은 우정총국을 세우고 홍영식을 우정총판에 임명했습니다. 홍영식은 우편업무와 관련된 각종 법규와 규칙인 대조선우정규칙을 만들고 일본 정부 인쇄국에 문위우표 인쇄를 발주하고 이상재를 비롯한 14명의 초기 우정국 직원들과 함께 경인간의 우편 업무를 시작하였구요.
따라서 인천은 서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우편물을 접수하고 배달한 도시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기록에는 한성과 인천의 우체사 체전부는 매일 오전 9시에 각각의 우체사에서 우체낭을 짊어지고 동시에 출발하여 40리를 걸어 중간지점인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만나 서로 우편물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초창기 우체부들은 우편배달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박주사댁', '김생원댁' 등 부정확한 주소가 적힌 우편물을 들고 하루종일 수소문을 하고 찾아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직에 있는 사람일 경우 반드시 관직+성+이름을 기재해야 하며, 절대 성+관직으로 기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우체국은 휴무없이 운영하도록 되어 있어, 우체국에 계신 분들의 노고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8. 우리나라의 최초이자, 비운의 우표, 문위우표!
문위우표란 당시의 화폐단위가 문(文)이었기 때문에 후에 수집가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에요. 문위우표는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 5종으로 일본 정부(일본대장성인쇄국)에 의뢰, 제작하여 우정총국 개시와 함께 판매할 예정이었으나 우정총국 개시일까지 5문과 10문만 도착하여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 25문, 50문, 100문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지 다섯 달 뒤인 1885년 음력 3월에야 일본에서 도착하여 정식 발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의뢰인의 의뢰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그 우표를 보내고 인쇄 대금을 요구하였었습니다. 그리고 5문, 10문의 발행된 우표들 역시 발행된지 얼마되지 않아 사용이 중지되는 비운의 우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9. 나만을 위한 우표를 만들 수 있다!
인터넷 우체국에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