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습니다. 기업의 비용 절감, 경쟁력 강화, 미래 대비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과 물류 산업은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빠른 만큼, 그 변화의 충격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전달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탱돼 왔던 현장은 이제 기계와 알고리즘, 데이터 중심의 질서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도입 초기, 요금 수납을 담당하던 직원들이 직접 하이패스 이용을 권유하는 안내 전단을 나눠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기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들은 고객들에게 새로운 시스템을 설명하고 사용을 독려했습니다. 조직의 변화와 효율을 위해 스스로의 역할이 사라질 수 있음을 감내한 선택이었습니다. 차갑고 잔인한 장면이었고, 묘한 존엄이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결코 과거의 일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디지털 트윈, 자동화 설비, 피지컬 AI로 대표되는 기술 전환의 흐름은 이제 유통·물류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반복 업무는 빠르게 대체되고, 관리·운영 영역 역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온 인력일수록 변화의 속도 앞에서 불안과 상실을 먼저 마주하게 됩니다.
최근 해외 물류기업과 철도·운송 기업들이 연이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시장 환경 변화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관리자급 인력과 현장 인력을 동시에 줄이는 모습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국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GM 세종 부품물류센터 하청 노동자 집단 해고 사태는, 자동화나 기술 전환 이전에 고용 구조 자체가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 번 드러냈습니다. 물류 업무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빠져나간 구조는 ‘효율’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질문을 남깁니다.
기업의 선택이 모두 잘못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비용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도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AI와 로봇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세계 노동시장은 이미 거대한 재편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외면한 채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 역시 책임 있는 경영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함께 회사를 키워온 사람들에 대한 ‘태도’만큼은 별도의 문제로 남습니다. 직장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직장은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의 일상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효율을 이유로 한 결정일수록, 작별의 방식에는 더 많은 고민과 예의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보상이나 법적 절차를 넘어, 그동안의 기여와 시간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름다운 해고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확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이패스 요금 수납 직원들이 전단지를 건네며 변화의 방향을 설명했던 그 장면처럼, 최소한 서로를 기만하지 않는 작별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동화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대일수록,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기업의 진짜 수준을 드러내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기술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입니다.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떠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성숙해질 수 있을지. 유통과 물류 산업이 지금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어쩌면 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