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GPT를 사용하면서 커머스의 출발점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검색어를 고민하지도, 상품을 비교하지도 않았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선택지로 이어졌습니다. 그 끝이 오픈마켓이 아닌 특정 브랜드의 자사몰이었다는 점은 AI가 쇼핑 영역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술이 더 편리해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오픈마켓 중심의 쇼핑 질서가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지금까지 온라인 쇼핑의 승부처는 검색창이었습니다. 어떤 키워드를 잡느냐, 얼마나 상단에 노출되느냐가 성과를 좌우했고, SEO와 AEO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화형 AI 환경에서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사용자는 검색어를 만들지 않고, 질문을 던집니다. AI는 그 질문 뒤에 숨은 조건과 맥락을 해석한 뒤 선택지를 먼저 정리합니다. 검색 결과 페이지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페이지를 중심으로 작동하던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번 경험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선택된 자사몰의 정체였습니다. 기술적으로 특별하지도 않았고, 트래픽이 압도적인 곳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상품 설명이 담백했고,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적합한지가 명확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과장된 문구 대신 조건과 맥락이 드러나 있었고, 구매 이후의 불확실성도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습니다. AI는 많은 선택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대신 설명하기 가장 수월한 정보를 가진 곳을 골랐습니다.
이 지점에서 커머스 전략의 기준은 다시 설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검색엔진을 위한 최적화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AI가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정보 구조를 갖췄는지가 경쟁력을 가릅니다. 트래픽의 크기보다 설명의 명확성이 우선되는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는 주체는 자사몰을 통해 정보를 직접 관리해온 브랜드들입니다. 특정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사몰 안에서 상품의 기준과 메시지를 꾸준히 정리해온 곳들입니다. AI는 광고비나 플랫폼의 영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용자 상황에 맞춰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판단합니다. 자사몰은 그 판단에 필요한 재료를 가장 직접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D2C 구조를 병행하며 자사몰 유입을 전략적으로 키워온 브랜드들에게 이번 변화는 분명한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검색 중심 플랫폼이 마주한 부담은 단순한 경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검색어 입력을 전제로 한 구조 자체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검색어를 고민하지 않는 순간, 상단 노출을 전제로 설계된 전략의 효율은 급격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발견의 주도권이 검색에서 대화로 이동한다는 것은, 플랫폼이 쥐고 있던 통행 구조가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흐름은 GPT 하나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록이나 제미나이를 비롯한 다른 생성형 AI 역시 의사결정을 보조하고 선택 경로를 단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서비스의 유행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보를 찾고 물건을 구매하는 인터페이스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온 쇼핑의 문법은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유통과 물류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 전략은 여전히 노출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AI가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준비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의사결정의 방식이 바뀌면 물동의 흐름과 채널의 권력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변화는 요란하지 않지만, 준비되지 않은 곳에게는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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