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화되는 노조와 'ESG' 인권경영에 관해

물류산업은 여전히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으로 꼽힙니다.
5/28 화요일 로지브릿지 뉴스레터입니다
2024/05/28 화요
 
 
 
산의 매력,
정상이 있어 도전 의욕을 갖게 한다.
바다의 매력,
정상이 없어 욕심을 내려놓게 한다.
당신의 매력,
때론 산을 때론 바다를 찾을 줄 안다.
 
- 정철 -
 
 

✔ 노조가 줄어든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022년 노동조합 조직률은 13.1%, 전체 조합원 수는 272만명으로 전년 대비 조직률은 1.1%, 조합원 수는 21만명 감소했습니다. 특히 조합원 수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12년 만에 줄은 건데요.
 
고용노동부는 주요 원인으로 ▲장기간 활동을 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해산 ▲노동조합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경우 목록에서 삭제 ▲건설부문 노동조합이 전년대비 감소한 조합원수 신고를 꼽았습니다. 특히 건설부문은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가 21년 10만6천명에서 2만9천명으로, 미가맹 건설산업노조가 21년 8만2천명에서 8천명으로 줄어 규모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조합 신설은 431개소로 조합원 수는 7만2천명 증가했지만, 전년(568개소)에 비해 줄어들어 2023년 통계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조직원 수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게다가 기존 노조 가입 인원들은 점차 고령화되는 반면에 젊은 신입사원들은 노조 가입에 소극적이라는 업계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2012년 노조 가입 비율이 74.1%에 달했으나, 2020년부터는 70% 아래로, 2022년에는 50%대 진입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8년 출생자가 퇴직하는 2018년부터 2026년까지 현대차의 정년퇴직자 숫자는 1만9431명에 달합니다. 노조를 주도하던 세대층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노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산직군의 감소도 가파릅니다.
 
현대차의 국내 고용 인원은 2012년(5만9831명)에 비해 2022년(7만3431명)에 23% 증가했는데 직군별 고용 인원 증가율은 연구직의 비율이 60%에 달해 압도적으로 높으며, 생산·정비직군은 4%에 그쳤습니다. 전체 임직원 중 생산·정비직군이 차지하는 비율만 보더라도 약 8% 감소했고요.
 
현대차는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에 따라 지난해부터 수백명 규모의 생산직 채용을 진행했는데 10년만에 신규 채용을 진행한다는 점, 매년 1~2천여명의 정년퇴직자 중 상당수가 생산직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적은 규모의 채용으로 보입니다. 결국 생산직 자체가 준다는 건데요. 촉탁직이나, 외주 하청의 영향도 있겠지만 현대차는 이미 자동차 공정 자동화에 대한 준비를 하는 듯 보입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는 현대차의 자회사 현대위아의 AMR(자율이동로봇), 무인유도차량(AGV), 두림야스카와의 로봇 자동화 시스템 등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2021년 1조원을 투자해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로봇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까닭인데요. 올해 10월부터 가동할 이 공장이 테스트베드를 마친 후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생산직군 채용은 더욱 감소하게 되고, 은퇴와 맞물려 노조 가입자 수 감소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 노동이사제

 

노조 가입자 수가 지속 감소하고 세력이 약화된다면 노사 간 힘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하위권이기도 하고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는 ‘노동이사제’가 꼽힙니다.
 
주로 유럽(19개국)에서 활용되는 제도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14개 국가에서는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하면 모두 노동이사를 두도록 규정하는데요. 가장 선진적인 사례로 꼽히는 독일은 현재 500명 이상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민간, 공공 불문)에는 노동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민간기업까지 확대 적용시키는 흐름을 보면, 주주뿐만이 아닌, 노동자들도 기업의 이해당사자로 여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노동이사제 발전은 아직 더딘 수준입니다. 국내에서는 현재 공공기관에만 도입된 상태로 2016년 서울시가 최초로 100명 이상의 규모를 가진 공사·공단.출연기관에 노동이사를 두는 조례를 제정한 것이 시작이었는데요. 이후 2022년 1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지난 3일 제 323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는 ‘서울시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기 전, 더불어민주당 박유진 서울시의원의 반대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조례 개정안은 서울시 산하 노동이사 선출 적용 기준을 기존 정원 100명 이상에서 300명으로 상향하고, 2명을 둘 수 있는 기준도 300명 이상에서 1000명으로 강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박유진 의원은 교통공사를 제외하면 평균 직원 수가 560명 정도인 서울시 투출기관에 대해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이사제를 축소시키려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한 바 있죠. 그러나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노동이사를 도입한 21개 기관(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총 24개)은 13개로, 인원도 34명에서 17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이죠.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25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 등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언급했습니다.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책임지겠다는 건데요, 일각에서는 2022년 기준 86.9%에 달하는 미조직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건 분명 좋은 정책이지만, 오히려 노조와 미조직 근로자들의 편을 나누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혁신적인 기술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 ESG 인권경영이란
 
노조 가입자 수의 감소, 노동이사제의 축소는 결국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글로벌 경영 트렌드와 역행하는 행보인데요. EU(유럽연합)의 ‘CSDDD(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이 올해 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인권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7년부터 유럽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공급망 내에서 인권과 환경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실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최근 강제노동과 같은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는 인권이 국제 통상의 이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해진 듯 보이죠.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92호에 따르면 최근 세계벤치마킹연합(WBA)의 파트너 기관 비정부기구(NGO) 휴먼아시아는 국내 대표 기업의 12개사(민간 10곳, 공기업 2곳)를 대상으로 인권 실사 수준을 평가했는데요. 글로벌 기준인 ‘기업인권벤치마크(CHRB) 핵심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 지표’를 토대로 매년 개선 방향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12개사 중 8개사는 24점 만점 기준으로 12점 이하를 기록했는데요. 대상 기업들은 평가 영역 중 ‘인권 존중 내재화와 인권 실사’ 영역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인권 위험이나 영향을 식별했더라도 정책적 조치, 효과 추적이 미비하거나,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절차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수의 기업이 구제 절차나 구제책이 잘 적용되는지 모니터링하는 절차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고요.
 
노동이사가 노동자들의 의견을 이사회에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이라 본다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제 통상 이슈에 민감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친환경만이 아니라 인권경영 트렌드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 물류도 마찬가지

 

물류산업은 여전히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으로 꼽힙니다. 이미 여러 물류센터는 인력을 적시에 수급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수도권에서 버스 수십대를 대절해 출퇴근을 제공하는 실정입니다. 통계상에서도 인력난이 심각함을 알 수 있는데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상화물운송업의 지난해 상반기 구인인원은 4만2341명이었으나, 채용인원은 1만8633명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 운송업의 현업 대비 인력 부족률은 9.7%에 달합니다. 국가산업의 동맥이라고도 불리는 물류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화물운송업 종사자는 점차 고령화되고, 신규 인력의 유입은 감소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찍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 또한 우리 물류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2030년, 일본 전역 화물의 35%가 멈출 것이라고 전망하는데요. 저출생·고령화와 더불어 트럭 운전기사의 연간 잔업 시간을 960시간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숙련 인력 부족 등 구인난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죠. 유럽, 미국, 일본 등은 이를 먼저 겪고 정년퇴직한 인력을 재고용하거나, 이민자를 유치하는 등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노조 가입을 독려한 바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든지, 노조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입법 시도 등 여러 고용의 질 향상 정책을 펼치며 '노동 개혁'을 위해 노력했죠. 노조가 강할 때 불평등이 줄어들고, 경제가 좋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동조합이 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도와주므로 공공정책이 노동 문제를 개선하려면 노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봤던 거죠.
 
사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노동자입니다.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결국 기업에 소속되어 근로자 혹은 노동자로 불리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노조나 노동자라고 하면 부정적 인식의 프레임이 씐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노동자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노조의 권한이나 역할이 축소되면 사측과의 협상력에 있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는 결국 국가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한 발 더 나아가서 EU의 공급망실사법이 발효를 앞두고 있어 인권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법적장치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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