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피더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과거 '파멸적 경쟁'을 외치던 머스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 해운업계는 '폭풍전야'의 상황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3/19 화요일 로지브릿지 뉴스레터입니다
2024/03/19 화요일
 
 
 
실패는 옵션 중에 하나다.
실패가 없다는 건 혁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 일론 머스크 -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구교훈
 

✔ 부산항, 피더항되나?

 

뉴스로드에서 2월 21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제미나이 협력(Gemini Cooperation)'이 부산항을 기항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제미나이 협력은 '머스크(Maersk)'와 '하팍그로이드(Hapag-Lloyd)'가 연합한 동맹(얼라이언스)인데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죠. 전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인 '아시아-유럽항로'에서 부산항을 직접적으로 기항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래는 부산항을 허브(Hub)항으로 뒀었는데, 이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얘기죠. 피더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피더항이란, 북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가 로테르담항, 함부르크항, 앤트워프항이거든요. 그 외에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그리고 덴마크 이런 항구들은 직접 큰 컨테이너선이 기항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로테르담항, 함부르크항 등을 거쳐서 가는 거고요. 이걸 TS(환적)라고 하죠.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기간항로에서 부산, 일본, 대만, 베트남은 제외한다는 건데요. 허브항은 상해 '양산항', 최근 가장 많이 성장한 '닝보항', 말레이시아의 '탄중 펠레파스항' 이런 곳으로 두고, 일본, 대만, 베트남 그리고 부산항은 피더항으로 두겠다는 거죠.

 

중요한 건 이유입니다. 이 보도 자체가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팍그로이드가 '디얼라이언스(ONE+Yang Ming+HMM)'를 탈퇴한 대표적인 이유가 '정시성'이거든요. 먼저 컨테이너의 정시성이 무너졌다’ 팬데믹 이전에 글로벌 선사들의 정시성은 무려 85% 이상에 달했는데, 팬데믹 때 미 서안 항만의 공급망이 붕괴·지연되면서 30%대로 추락했습니다. 그때 선사들이 역대급 매출과 영업이익을 실현한 거고요.

 

이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정시성이 회복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홍해사태로 인해 수에즈운하를 통하는 물동량의 30%가 차질을 빚게 되면서 정시성에 영향을 미치게 됐죠. 결국은 운송시간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하팍그로이드의 CEO 얀센이 ‘디얼라이언스 탈퇴’라는 결단을 내린 거죠. 정시성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디얼라이언스 동맹 중 점유율이 큰 하팍그로이드가 탈퇴하고, 2025년 2월에 머스크와 제미나이협력을 맺기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하팍그로이드는 정시성을 90%로 회복하겠다는 목표인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항을 기항할 수 없게 되는 거고, 허브항만 기항해야 되는 거죠. 내륙운송에서도 볼 수 있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입니다. 결국 어떤 항은 허브가 되겠지만, 어떤 항은 스포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머스크와 하팍그로이드는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비중을 낮춘다는 거고 즉,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거죠. 동남아시아 쪽이 뜨고 있으니까 선택과 집중을 한 겁니다.

 

 

✔ 부산항 경쟁력↓

 

그리고 이런 부분은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간 거대한 글로벌 선사들이 부산항에 기항했기 때문에 PNC(부산신항만주식회사), 허치슨, 한진, HMM, PSA(싱가포르항만공사) 등 터미널 운영사들이 존재한 거거든요. 피더항으로 전락한다면 굳이 많을 필요가 없어지겠죠. 더군다나 동원글로벌터미널의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이 개장하는데, 부산항이 허브항이 아니라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고요. 진해신항, 가덕도 등 앞으로 개발될 인프라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결국 국가적으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꽤 선방한 편입니다. 전국적으로는 총 3014만TEU인데 부산항만 2315만TEU로 80%에 가까운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부산항이 중요하다는 거고, 전년 대비 4.9% 성장한 수치입니다. 문제는 1241만TEU(53.6%)가 환적, 순수한 수출입 물동량은 1074만TEU(46.4%)라는 건데, 이게 뭘 뜻하냐면 부산항은 환적으로 먹고산다는 거죠. 환적 물동량은 우리나라에 들렀다 가는 화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항만정책은 글로벌 선사의 전략 변경으로 인해서 수혜나, 피해를 입게 되는데요. 한마디로 글로벌 선사들이 기항을 하냐, 안 하냐가 항만의 희비를 가르게 만든다는 겁니다. 보통 GTO(글로벌 터미널 운영사)가 선석(선박들이 접안할 수 있는 장소)을 여러 개 갖고 있는데 선사와 계약할 때 보통 5~10년 정도 계약하거든요. 안정적인 작업을 위해서 장기간을 계약하고, 공생하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까 터미널을 이전하면 선사가 같이 이전해야 합니다. 지금 부산항에도 그런 상황에 대한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부산항이 피더항으로 전락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선사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수출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중요해서 단기간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요. 게다가 제미나이 협력에 속해있는 머스크와 하팍그로이드는 글로벌 컨테이너시장을 리드하는 선사이기도 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HMM, 그리고 국내 해운산업의 대응과 발전이겠죠)
 

✔ 선제적 대응 필요

 

뉴스로드뿐 아니라 비즈워치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룬 바 있어서 개인적인 견해와 더불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부 언론에서는 얼마 전 하팍그로이드 CEO가 부산항에 온 이유가 HMM과 협력하기 위함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 HMM의 매각 예비입찰 때 하팍그로이드를 제외한 부분 등을 고려하면 그럴 확률은 적을 것으로 생각되고요. 오히려 다른 메시지를 주고 가지 않았을까. 제미나이 협력으로 옮겨가면서 한국과는 거리를 두는, 부산항의 비중을 낮추는 그런 메시지를 주고 가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해운·항만정책에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현재 디얼라이언스는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주당 41회 운항 중입니다. 2M(Maersk+MSC)은 54회, 그런데 제미나이 협력은 주당 26회만 운항, 경쟁 동맹에 비해서 반만 하겠다는 거죠. 이런 뉴스를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해양수산부, BPA(부산항만공사), HMM 등의 경우에는 이 뉴스를 눈여겨보고,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들이 공식화되면 정말 심각한 거거든요.

 

덴마크 컨설팅기업 ‘베스푸치 마리타임(Vespucci Maritime)’의 ‘라스 얀센(Lars Jensen)’은 이런 말을 했어요. 하팍그로이드의 대체 동맹사를 찾기 위해 디얼라이언스의 소속사인 ONE(Ocean Network Express), HMM, 양밍에 압력이 가해진다고요. 또한 코리아쉬핑가제트의 보도에 따르면 ONE이 대만의 완하이라인과 협력해 아시아-북미 서안을 운항하겠다고 합니다. 1만3천TEU급 7척을 투입한다는 건데요. 디얼라이언스 동맹사인 ONE이 비동맹사인 완하이라인과 협력한다는 것 자체가 디얼라이언스의 균열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까닭이죠.

 

더군다나 오션얼라이언스(CMA CGM+COSCO+EVERGREEN)의 계약이 2027년에 끝나는데, 선제적으로 이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일까요. 이탈을 방지하고, 선제적으로 동맹을 공고하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부분을 볼 때 오션얼라이언스는 단단해 보이고, 제미나이 협력은 정시성이나 친환경 등 서로 해운경영철학이 맞아떨어졌으며, MSC는 선복량이 600만TEU를 넘는 단독 1위로 올라섰고요.

 

그렇다면 남는 건 하팍그로이드가 탈퇴하면서 축소된 디얼라이언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HMM은 어떤 적극적인 조치와 대응을 강구하고 있느냐가 궁금해지는데요. 해운동맹과 관련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고, 일부 언론의 제미나이 협력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 그리고 글로벌 선사들의 지난해 실적이 악화된 것. 영업이익이 보통 90% 감소했고, 적자로 전환된 글로벌 선사들이 여럿 있죠. 이런 악조건들이 겹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홍해사태가 진정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협상을 하게 되면 급격히 공급망이 좋아지면서 해운시황이 침체기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가 다시 1000포인트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까지 전망됩니다.

 
✔ 로지브릿지의 생각은
 
작년 12월 4일 머스크가 공개한 보도자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점은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생산 허브이자 소비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공급망 인프라를 확장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전방위적인 물류 부문의 투자를 예고했으며, 여기에는 해운과 터미널 인프라 투자에 관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특히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탄중 펠레파스(Tanjung Pelepas) 항구를 언급했는데, 이 항구가 전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핵심 통합 물류 허브가 될 준비를 갖췄다고 분석했습니다. 탄중 펠레파스항은 머스크도 지분을 보유 중인 곳으로 알려졌는데, 향후 '허브'항의 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충분해 보이죠.
 
사실 탄중 펠레파스는 단순 '거점항'의 기능을 넘어 글로벌 육해공을 연결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입니다. 머스크는 2026년까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전역에 약 48만제곱미터의 생산 능력을 추가할 계획인데요. 동시에 지역 항공 화물 허브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의 육상 창고를 늘리는 데도 투자를 계획 중이죠. 더군다나 인접 지역에는 '넥스트차이나'로 언급되는 제조업 강국 '인도'도 위치해 있습니다. 2030년이 되면 인도가 일본과 독일을 넘어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곤 하죠. 조금 거시적으로 보면, 글로벌 제조 거점의 이동과,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여러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으로 보입니다.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창출되는 수요에 더해, 이를 거점으로 전 세계를 '육해공'으로 연결하려는 계산이 깔린 게 아닐까요.
 
결국 중장기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동남아시아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나가겠다는 심산으로 보입니다. 여기다 'ESG'와 '탄소중립' 등을 준비하는 일환으로 육상을 연결하는 운송 트럭의 적재 용량을 늘리고, 친환경적인 연료로 대체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수립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동남아시아) 당국과 함께 친환경 선박 운용을 위한 녹색 연료 인프라 구축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요. '제미나이 협력'은 단순한 해운 동맹 그 이상의, 탄소중립을 염두에 둔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비롯한 다방면의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어쩌면 머스크는 이미 숱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어느 정도 해운에서의 '허브 앤 스포크' 모델의 검증을 끝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미나이 협력이 지금 당장 엄청난 변화와 물동량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은 제한적이겠지만, 과거 '파멸적 경쟁'을 외치던 머스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 해운업계는 '폭풍전야'의 상황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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